"방금 내가 무슨 말 하려고 했지?" "가스 불 잠갔나? 현관문은?"
살면서 누구나 겪는 아찔한 깜빡임. 나이가 들수록 이런 순간은 더 잦아집니다. 대부분은 그저 피곤해서,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'건망증'이겠거니 하고 넘기곤 하죠.
하지만 만약, 이런 깜빡임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우리 뇌가 보내는 절박한 '신호'라면 어떨까요?
혹시 우리 부모님이, 혹은 나 자신이 건망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치매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? 치매는 누구에게나 두렵고 피하고 싶은 단어입니다. 하지만 무서워하고 외면할수록 병을 키우는 지름길이 될 뿐입니다.
가장 중요한 것은 '초기 발견' 입니다. 빨리 알아차릴수록 진행 속도를 늦추고, 더 나은 삶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. 지금부터 단순한 건망증과 치매 초기증상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,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10가지 신호를 알려드립니다. 꼼꼼히 읽고 체크해보세요.
치매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10가지
1. 대화의 핵심을 놓치는 기억력 저하
가장 흔하게 알려진 치매의 신호입니다.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잊느냐입니다.
- 치매 신호 : 방금 나눈 대화 내용,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. 며칠 전 중요한 사건이나 대화 내용을 통째로 잊어버려 대화가 이어지지 않습니다. 같은 질문을 5분도 안 되어 반복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유명인의 이름, 특정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습니다. 하지만 힌트를 주거나 시간이 지나면 "아, 맞다!" 하며 기억해냅니다. 경험의 일부를 잠시 잊는 것일 뿐, 경험 자체를 잊지는 않습니다.
- 결정적 차이 : 건망증은 '힌트'를 주면 기억하지만, 알츠하이머 초기증상과 같은 치매는 사건 자체가 머릿속에서 지워져 힌트를 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.
2. '그거', '저거'가 늘어나는 언어 장애
대화 중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잦아집니다.
- 치매 신호 : "냉장고에서 저거 좀 꺼내줘"처럼 사물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대명사로 둘러댑니다. 혹은 전혀 엉뚱한 단어를 사용해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. 문장이 짧아지고,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.
- 단순 건망증 : 가끔 특정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 뿐, 일상적인 대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.
3. 오늘이 며칠인지,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움
시간과 장소를 파악하는 능력, 즉 '지남력'이 무뎌지기 시작합니다.
- 치매 신호 :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, 무슨 요일인지 자주 헷갈립니다.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도 합니다. 심해지면 낮과 밤을 혼동하거나, 수십 년 살아온 익숙한 집을 낯설어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오늘 날짜를 잠시 잊더라도 달력을 보거나 주변 상황을 통해 금방 알아차립니다.
4. 익숙한 길에서 갑자기 막막해지는 시공간 능력 저하
늘 다니던 동네 길, 집 근처 마트 가는 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집니다.
- 치매 신호 : 자주 가던 장소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발생합니다. 집 안에서 화장실이나 안방을 못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. 운전 중 방향 감각을 잃고 익숙한 길에서 당황하기도 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방향을 헷갈릴 수는 있지만, 익숙한 공간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.
5. 돈 계산이 자꾸 틀리는 계산 능력 저하
이전에는 쉽게 하던 장보기나 돈 관리가 버거워집니다.
- 치매 신호 : 마트에서 물건 값을 계산할 때 자꾸 틀리거나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. 돈을 줬는데도 안 줬다고 하거나, 거스름돈을 잘못 받는 일이 잦아집니다. 은행 업무나 공과금 납부를 어려워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복잡한 계산은 헷갈릴 수 있지만, 간단한 셈이나 돈 관리는 문제없이 해냅니다.
6. 간단한 일도 계획하고 실행하기 어려움
요리나 가전제품 사용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합니다.
- 치매 신호 : 늘 하던 요리의 순서를 잊어 태우거나 간을 맞추지 못합니다. 세탁기나 리모컨 같은 익숙한 기기 사용법을 갑자기 잊어버립니다.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집중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, 한 가지 일은 순서대로 잘 처리합니다.
7. 물건을 상식 밖의 장소에 두고 남을 의심함
단순히 물건을 어디 뒀는지 잊는 수준을 넘어섭니다.
- 치매 신호 : 안경을 냉장고에 넣거나, 지갑을 쌀독에 숨겨두는 등 상식 밖의 장소에 물건을 둡니다. 그리고 자신이 뒀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는 "누가 훔쳐 갔다"며 가족을 의심합니다.
- 단순 건망증 : 물건을 어디 뒀는지 기억이 안 나 답답해하지만, 결국 스스로 찾거나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.
8.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 변화
온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의심이 많아지거나, 아이처럼 감정적으로 변합니다.
- 치매 신호 : 이전과 달리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내거나, 쉽게 삐치고 눈물을 보입니다. "가족들이 내 돈을 노린다"는 식의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.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집니다.
- 단순 건망증 : 나이가 들며 성격이 다소 변할 수는 있지만, 기본적인 인격은 유지됩니다.
9. 좋아하던 취미도 시큰둥, 의욕 상실
매일 하던 아침 산책, 즐겨보던 드라마, 평생 해온 취미 활동에 흥미를 잃습니다.
- 치매 신호 : 모든 일에 무관심하고 귀찮아합니다.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, 하루 종일 멍하니 TV만 보거나 잠만 자려고 합니다. 사회적 활동이 급격히 줄어듭니다.
- 단순 건망증 : 때때로 의욕이 없거나 피곤할 수는 있지만, 휴식을 취하면 다시 회복됩니다.
10. 속담이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함
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.
- 치매 신호 : "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"와 같은 속담의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해석합니다. 대화의 맥락을 놓치고, 농담에 웃지 못하거나 오히려 화를 냅니다.
- 단순 건망증 : 추상적인 사고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.
결과 확인,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음 단계
위 10가지 항목을 꼼꼼히 체크해보셨나요? 만약 부모님이나 자신에게 2~3가지 이상 의 증상이 수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, 더 이상 '설마' 하며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.
이
치매 체크리스트
는 진단 도구가 아닙니다. 뇌가 보내는 '경고 신호등' 입니다.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.
만약 여러 항목에 해당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?
- 겁내지 말고 전문가를 찾으세요 : 혼자 걱정하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. 가까운 신경과,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보건소의 치매안심센터 에 방문하여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.
- 치매 상담 콜센터를 활용하세요 : 당장 병원 방문이 망설여진다면, 전문가의 상담을 먼저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. 365일 24시간, 전국 어디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.
- 치매상담콜센터: ☎ 1899-9988
-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: https://www.nid.or.kr (가까운 치매안심센터 검색 가능)
부모님 치매
는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족만이 감당해야 할 병이 아닙니다. 국가와 사회가 함께 돕고 있습니다.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어 첫걸음을 떼는 것입니다. 조기 발견과 꾸준한 관리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소중한 시간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희망입니다.